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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05-03-23

비 오는 날의 단상

작성자: 정은랑  

어제는 비가 내렸다.
봄비...
비가 오면 계절은 성큼성큼 바뀌어 간다.
이제 봄으로 거침없이 걸어 들어가겠지...
아침에 출근하러 버스를 기다리면서 나를 한순간 미소짓게 한 일이 떠오른다.
내 앞에 꼬슬꼬슬 레이스가 달린 물방울 무늬의 우산을 쓰신 아저씨가 서 계셨다.
처음엔 참 취향이 독특하신 아저씨라는 생각으로 우스워서 몰래 웃다가 잠시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자세히 살펴보니 아저씨의 우산은 한쪽에 살이 빠져서 약간 기울어진 상태였다.
나 나름대로 그 아저씨 집의 아침 풍경을 떠올려 보았다.
아이들이 정신없이 등교를 하는 아침 시간. 분명 그 댁의 아주머니는 멀쩡하게 성하고 예쁜 우산들은 아이들 손에 쥐어 학교에 보냈을 것이다. 뒤이어 출근하는 아저씨에게 들려진 우산은 딸아이가 쓰다가 살아 부러져 버린 레이스 우산...
그래도 아저씨는 허! 참! 하고 웃으시면서 그 우산을 들고 출근길에 올랐을 것이다.
그 뒷모습을 약간은 안스러워하면서 약간은 사랑스러운 눈길로 아주머니는 아저씨의 출근길을 배웅했을 것이다.
아마 그 부부는 어느 봄비 내리는 날 아스팔트위에 떨어지는 벚꽃길을 나란히 살이 부러진 레이스 우산 하나를 받쳐 들고 걸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싱그러움이 사라진 아주머니의 얼굴을 안스러워하면서 이제는 머리숱이 성글어진 아저씨의 머리를 안스러워하면서 ...
그래도 그들 부부는 아주 행복해 할 것 같다.
서로가 그 긴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음에, 그리고 또 남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살아갈 것 같다.
그 아침시간 , 나는 혼자 이야기를 만들어 가며 혼자 흐뭇해했다.
아름다운 아침이었다.